코로나가 세계를 패닉에 빠뜨리고, 일본이 경제제재를 가한 이 시국에???
걱정마라, 이 이야기는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이야기.
그러니까 2017년 여름의 이야기이다.
그해의 여름도 뜨거웠다. 거기다가 머지않아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 한 가지 사실이 지옥 같은 더위보다 내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게 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군에 입대하는 것을 계기로 '나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입대'라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사실. 그런 끔찍한 일을 두 달 앞두고 있었을 때, 한창 핫하던 배틀 그라운드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내게 절친한 친구의 카톡이 왔다.
내용은 이렇다.
"일본의 대마도에서 국제 마라톤을 한다는데.. 참가 해볼 생각 없냐?"
마라톤? 마라톤 하면 내 머리속에는 마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달리는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스스로 해볼 생각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군에 입대하기 전에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모니터에서 적의 공격에 당하고 있는 캐릭터를 무시하고서는 나는 냉큼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ㅇㅇ ㅋㅋ 가자"
그리고 곧바로 나는 인터넷에서 러닝 연습을 할 운동복과 러닝화 두개를 주문했다. 대충 찾아보니 대마도 국제 마라톤(이름은 국제마라톤이지만 그 규모는 작다.)은 10km와 하프 마라톤(20km)이 있고, 그 이외에 걷기나 5.4km가 있었다.
20대 젊은 남자가 5.4km를 달리고자 해보니 너무 짧은 거리 같이 느껴졌고, 그렇다고 20km를 한 달 만에 해내는 것은 너무 높은 벽같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고, 축구를 열심히해서 기초 체력이 튼튼했으면 고민하지 않고 20km를 뛰었겠지만...
나는 집에서 게임만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만해 보이는 10km를 선택하고 참가 신청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아마 참가비는 2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다가 도시락 + 티셔츠 + 기념상장 + 목욕탕 이용권 같은것도 줬으니까.
러닝 연습을 하다.
며칠 후 러닝화가 도착하자 나는 곧바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준 친구이자 임관 준비와 개인 건강을 위해 매일 러닝을 하는 친구와 함께 집 근처 강에 있는 산책로로 나갔다.
그리고 2만 원 정도 하는 새 러닝화와 운동복을 입고서 달렸다.
죽을 맛이었다.
더 이상 뛰면 나는 죽고 말겠다 싶어 휴대폰으로 달린 거리를 확인해보았다.
"300m?"
미쳤다. 거기다가 한 낮의 더위가 땀을 비처럼 쏟아지게 만들었다. 친구가 나름 느린 페이스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방 죽을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며 땀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1km 밖에 뛰지 않는데도 죽을 것 같았다.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포기 할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미 마라톤 신청서는 발송 됐고,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군대에 가기 전에 뭔가 가치 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일주일 달렸다.
일주일 정도 달리자, 3km 정도는 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힘들었다. 10km를 정말로 달릴 수 있는걸까 의문이 생겼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들은 초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주일 정도 달렸다.
어느새 달리면 5~6km 정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속도는 느렸다. 빠르게 달린다면 달리다가 숨을 헐떡이다가 위에 들어있는 모든것을 게워내고 말 것이다. 속도는 빠르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만은 느껴졌다.
이때부터 슬슬 부산에서 가는 배편을 예매했다. 가격은 왕복으로 14만 5천원 정도였다.
한 달 정도 달렸다.
한 달 정도 달리니 악으로 뛰면 10km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매일 가능한 것은 아니고 컨디션이 좋을 때 한두 번 정도였다. 결국 마라톤에 참가하기 전 10km를 달렸던 것은 3~4번 정도일까?
또 이렇게 뛰고나면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고, 발바닥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슬슬 대마도에서 하룻밤 묵을 숙소도 예약했다. 총 일정은 1박 2일, 진짜로 마라톤만 뛰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러니까 1박 2일 만에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부산까지 가서 대마도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다음날에 마라톤을 뛰고 배 타고 돌아와서 부산에서 다시 내 집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부산으로 가다.
내가 사는곳에서 부산은 가깝지 않았다. 부산으로 가는 차편도 그리 많지 않아 나는 야간행 11:00시 버스를 타고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까지 걸린 시간은 5시간 30분.
의자가 불편한것은 아니었지만.. 엉덩이가 박살 나는 줄 알았다. 거기다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긴장감에 버스 안에서 뒤척이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시간은 느렸지만 확실히 흘러갔다. 나는 부산 종합 버스터미널에 새벽 4시 20분 정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가야 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가기에는 배 출발 시간까지 너무 많이 남았었다.
원래 버스도 잘 안타고 다니는 뚜벅충이었던 나는
"그래 걸어가자!"
라고 생각해 부산국제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했고, 부산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50분 정도 걸어가도 아직 가야 하는 거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느새 날은 밝았고 옆에는 버스들이 슝슝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제 시간에 도착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어쩔 수 없이 버스에 탑승했다.
다행히 1시간 정도 여유를 남긴체 어찌어찌 부산 국제터미널에 도착했다.
부산 국제터미널, 신입 직원
그러고 보니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출발을 하기 2주일 정도 전에 갑자기 배편이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 원래 부산-이즈하라(쓰시마 남쪽)에 가야하는데, 부산-히타카츠(쓰시마 남쪽) 배편으로 변경이 되어 환불을 해주거나 배값을 50퍼센트 할인해주고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준다고 했다.
어디를 가든 나는 안 탈수는 없으니 알았다고 했다.
솔직히 대마도 남쪽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14만 원짜리 배값이 7만 원이 되니까 개꿀이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선사 카운터로 가서 발권을 한 뒤에 출국장으로 가서 표를 보여줬다. 그런데 갑자기 표를 보던 심사관(명칭 모름?)이 나를 제지했다.
"표에 이름이 안써져 있네요. 아, 이 사람들... 진짜.. 빨리 뛰어가서 새로 발권해달라고 하세요."
표에 내 이름이 안써져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내 표를 발권해주던 여직원이 신입 같아 보이기는 했다. 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냅다 달려 카운터로 가서 표를 보여주고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심사관(?)의 반응으로 보아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표를 새로 뽑은 나는 그제서야 출국장을 무사히 통과해 불어오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좌석에 앉은 나는 그제서야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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