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바퀴벌레와 불쾌한 동침을 한 이야기

말코 2020. 7. 3. 21:39
반응형

 

 

강원도 삼척 유채꽃 축제에서 촬영한 사진, 내용과는 무관계.

 

 

 

오해하지 마라, 바퀴벌레를 양육한다던가 하는것이 아니다.

 

 

몇년 전, 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회사에서 제공한 아파트 기숙사를 사용한적이 있다. 회사 쪽에서도 아파트를 대충 기숙사로 사용할 용도로 계약만 잡아놓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몇달간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그 기숙사에 명예롭게도 첫번째로 입사하게 되었다. 방, 화장실, 거실, 주방 이 하나씩 있는 간단한 구조였다.

 

3인실로 계획되어 있는 기숙사지만 당시에는 나와 친구 단 둘이서 사용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어린 나와 친구가 이 공간을 둘이서 사용한다는 사실만이 즐거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 알았어야 했다. 거실을 살펴보던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뭔가를 주웠다. 검고 말랑말랑 했다. 뭔가 누르면 터질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보는것이었다. 음식물 쓰레기인가 하여 손으로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때까지는 모든것이 순탄하게만 흘러갔다.

 

밤이 되어 대충 청소를 하고 거실에 친구와 이불을 깔고 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휴대폰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내일은 어떻게 일을 하게 될까? 잘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긴장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내 귓가를 스치는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종이를 바스락 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가 바닥을 기어다니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옆에 누워있는 친구한테 물어봤다.

 

"야, 뭔 소리 들리지 않냐?"

 

"뭐? 아무소리도 안 들리는데.. 어, 잠시만. 들린다."

 

친구한테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것을 알게 되자 나는 뭔가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딸칵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거실을 비추자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생전 처음보는 장면을 목격했다.

 

 

갈색이 바퀴벌레다.

 

 

얼핏 봐도 수십은 넘어보이는 바퀴벌레들이 우리가 이불을 깐 자리 바로 위에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불을 켜자마자 이 바퀴벌레들은 요란하게 날뛰더니 자신들이 기어나온 장판 사이로 잽싸게 움직였다. 바퀴벌레를 자주 본적이 없던 나와 친구는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금새 정신을 차려 "이대로 두면 안된다!" 라는 생각에 휴지를 빼어들고,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녀석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도대체 원래 살던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생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잘 먹고 잘 성장 해있었다. 본건 수십마리인데, 젊은 20대 남자 둘이서 공포 섞인 비명을 지르며 결국 단 한마리의 바퀴벌레 밖에 잡지 못했다. 당연히 이런 환경에서 "바퀴벌레 한마리 잡았으니 자자." 하고 다시 잠드는건 불가능했다.

 

공포와 호기심에 사로잡혀 장판을 집어들자, 방금까지만 해도 장판 위에서 파티를 벌이던 놈들 뿐만아니라 녀석들의 새끼와 알, 뉴페이스들이 잔뜩 숨어 있었다. 여기서 하나 더 충격을 받은게...

 

내가 처음 기숙사에 와서 거실에서 발견하고 손으로 주웠던것이...

 

 

바퀴벌레의 알이었다......

 

 

하여튼.. 녀석들은 처리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했다. 지금 당장 바퀴벌레 약을 사올 여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치약을 짜서 물이랑 대충 뿌리고, 나와 친구의 시야를 피해 장판 밑에서 도망쳐나온 녀석들을 몇마리 처리했다. 한마리 잡으니 두번째 세번째 바퀴벌레를 잡는것은 처음 죽일때보다 편해졌다.

 

여기서 알게된건데 바퀴벌레들은 죽을때 배속에 있는 알을 뿜어내며 죽는다. 동그란 알이 아닌 둥근 사각형의 주름이 있는 검은색이다.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알겠지만, 혹시 호기심이 생긴다면 검색해서 알아보는것을 추천한다.

 

결국 나와 친구는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쉬는날이 되면 곧바로 마트로 가서 녀석들을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구해오기로 했다.

 

몇일 뒤, 나와 친구는 직접 분사하여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는 스프레이와 개미약처럼 바닥에 놓아놓은 바퀴벌레 약 2개를 사가지고 왔다. 나는 그 바퀴벌레 약을 사용해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어놓고, 설치형 바퀴벌레 약을 바퀴벌레의 경로로 추정되는 곳에 이곳저곳 설치해놓고, 분사형 스프레이를 집어들고 장판을 들었다. 어제 치약을 뿌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장판 밑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자비없이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더 깊은 장판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움직임이 둔해지기는 했지만 큰 녀석들은 전부 도망쳤다. 작은 녀석들은 죽었지만...

 

이번에는 장판 위로 나타난 큰 바퀴벌레에게 스프레이를 분사해봤지만 녀석은 스프레이를 무시하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이 스프레이는 효율이 매우 안좋았다. 그래서 나는 스프레이는 단지 바퀴벌레를 고문하는 쾌감용 무기라고 결론 지었다. 설치형 약 같은 경우에는 바퀴벌레가 약을 먹고서 다른 바퀴벌레에게 먹이(약)를 나눠주면서 효과가 있는것이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 3일이 지났음에도 별 차이가 없는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치약같이 쨔내는 바퀴벌레 약을 사왔는데, 이 약을 곳곳에 뿌리고 하루 이틀 지나자마자, 바퀴벌레들이 장판 위에서 알을 뿜고 요절 해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장 효과가 좋은 바퀴벌레 약은 치약형 바퀴벌레 약이었다.

 

이렇게 몇달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이다 입대 문제로 친구가 먼저 떠나가고 그 다음에 한달 정도 더 남아있던 나도 그 바퀴벌레 지옥을 뒤로 하고 떠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짐 속에 바퀴벌레가 원래 집으로 따라왔다. 다행히 사는곳에는 바퀴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 박멸할 수 있었다. 만약 번식해서 바퀴벌레가 원래 집에서도 번창했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자, 나는 그 알바를 최악의 알바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반응형